4000원만 되도 사람들이 “주제에 뭐이리 비싸”라고 말하는 게 김밥의 현주소다. 김밥천국에서나 적당히 한끼를 때우기 위해 먹는 정말 가난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. 가뜩이나 맛없는 내용물에 식어빠진 밥을 아무 김 위에 올려서 만다. 눅눅해진 김에 마지막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해 참기름을 발라주는 건 필수다. 결국 참기름 향이 모든 것을 망쳐놓지만 어쩔 수 없다. 참기름은 한국인 미각의 많은 부분을 채워주는 귀중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다.
4000원짜리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다. 밥 대신 이상한 내용물이 많아지고 한입에 넣기 힘들 정도로 커질 뿐이다. 물론 밥과 내용물의 균형이 깨지는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. 어차피 내용물만 실하면 그만 아니던가?
근데 사실 김밥은 정말로 맛있는 음식이다. 그리고 그 핵심에는 김이 있다. ‘밥김’이 아니라 ‘김밥’이 아니던가. 그만큼 김의 질은 김밥에서 핵심요소 중 하나다. 일단 김밥에서 처음 혀에 닿는 건 모든 재료를 감싸고 있는 김이다. 김의 향을 느끼고 그 질감이 혀에 느껴진다. 좋은 김의 향은 생각보다 강렬해서 그 자체로도 “맛있다”라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다. 그 이후에 밥, 그리고 마지막 내용물이 혀에 닿게 된다. 그래서 밥의 간도 중요하게 작용한다. 적당한 양의 식초와 소금은 김과 그 안의 내용물의 풍미를 극대화 하는 역할을 해준다. 그리고 씹으며 김, 밥, 내용물이 함께 어우러진다. 누군가 한식의 기본은 어우러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? 하지만 정작 김밥이나 비빔밥을 보면 그냥 섞어놨을 뿐 어우러짐은 존재하지 않는다.
어차피 김 따위가 중요하지 않으면 캘리포니아 롤의 형태가 나을 수도 있다. 그러기에는 한국의 식자재 비용은 너무 비싸다. 결국 저렴하게 만들기 위해서 김밥천국의 형태가 최적일지도 모른다.
그럼에도 김밥은 충분히 고급 음식이 될 수 있다. 다만 “돈까스 주제에”, “김밥 주제에” 비싸다는 편견만 버리면 된다. 음식은 그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 방법에 따라서 가격이 결정된다. 음식종류와는 무관하다. 그렇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음식이더라도 그 가격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. 한우를 불판에 구워먹는 건 항상 비싸고 김밥은 항상 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요리에 대한 창의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.